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apresxdays

귿ː따

그리다, 긋다.


선 긋는 걸 선호한다.

내 삶의 조각들을 각기 다른 공간에 분리하는 게 좋다 느껴 생긴 습관인 듯하다.

 

Work-Life Balance. 워라밸.

 

일과 삶 사이에 존재하는 저 줄처럼, 선을 그려 명백한 차이를 두는 게 나에겐 편안함으로 다가온다. 운동할 때 모든 연락망을 잠시 잠재우고 나 자신을 고립시키는 방식을 택하는 것도 결국 내 시간에, 내가 원하는 일을 방해받지 않고 하기 위함이다.

 

처음엔 쉽지 않았다.

 

언제, 어디서, 어떤 연락이 올지 모르니 항상 전화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풀어내기까지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. 스마트기기의 진화를 접하고 경험하며 나 또한 새롭게 배우고 반응해 나갔다.

 

삐삐, 공중전화, 휴대폰, 그리고 스마트폰. 아니, 이젠 손목에 시계 하나만 차고 있음 언제 어디서나 세상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. 단순 내가 스마트워치 시대에 태어나고 자랐다면, always connected 항상 상시 연락 가능한 삶이 당연하고 이런 방식에 압박감을 느껴야 할 이유조차도 없을지도 모른다. 그게 당연한 거고 이게 표준인 지금 이니깐.

 

하지만, 난 지금처럼 "스마트"한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으며 기기 보단 두뇌에 더 의존하던 때에 눈을 떴다.

 

샌다. 생각이 또 샛길로 빠진다. 문명의 발달을 얘기하고자 한 게 아니었는데. 선을 긋자.


선을 그으며 사는 건 어찌 보면 더 피곤한 삶일지도 모르겠다.

 

이 친구 저 친구 우리 모두 친구. 한 바구니에 가지각색의 다수가 담긴 네트워크를 소유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반면에, 난 소수일지라도 각기 상황과 공간에 특화된 여러 바스켓을 만들어 분리해 담는걸 더 선호한다.

 

일적인 만남, 사적인 만남. 이렇게 크게 시작해 세분화하는 선 작업이 그릴 땐 귀찮지만 길게 볼 때 한결 더 편하다는 걸 느꼈다.

 

저 사람이 나에게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도록 긋는 선도 있겠지만, 결국 나 역시 넘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점찍어 놓는 용도이기도 하다.


처음부터 무조건 선을 긋고 관계들을 시작하는 건 아니라는 점. 이 점을 찍고 넘어가고 싶다. 모든 건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된다. 스타팅 포인트에서 쉼표가 될지, 마침표가 될지, 또는 커넥팅 포인트가 되어 새로운 줄로 그려지거나 또는 기존 라인에 이어질지. 이 부분만큼은 시간이 절대적이다.

 

섣불리 새로 만난 사람을 친구들에게 선보이고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. 상당히 프로페셔널하고 예의 바르던 이 사람은 술 한잔 두 잔에 점점 망가지며 점차 망나니가 되었고 결국 그 사람의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거래를 끊는 결과까지 도달했다. 입술이 닳도록 난 친구들에게 사과해야만 했고, 그 사람과의 선을 지워버렸다. 오점만 남은 관계를 정리했다, 한 점의 후회도 없이.

 

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쌓여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걸 느껴, 카테고라이징을 즐겨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.


이리저리 선을 그리다 보면 처음엔 지그재그로 여기저기로 뻗치기도 하지만 계속 긋다 보니 적절한 시기에 윤곽을 잡아 필요한 선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. 물론 아직도 해답을 찾진 못했다, 수많은 점들을 찍고 요리조리 선들을 그렸다 지웠다 하는 걸 보면.

 

그래도 이거 하나만은 확실한 정답이라 생각된다: 모든 점과 선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이어져야 한다는 것.


내가 굳건히 자리 잡고 흔들리지 않아야 튼튼한 선을 신선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.

 

connecting the dots, smudging the lines

#anecdote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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